25대 철종 - 예릉

조선 25대 왕

철종


25대 왕 철종은 사도세자의 증손자이자 정조의 아우 은언군의 손자이다. 
일명 강화도령으로 알려져 있다. 
헌종이 후사 없이 승하하자 19세에 강화도에서 농사를 짓다가 갑자기 왕위에 오르게 되었기 때문이다. 
철종은 이때부터 순원왕후의 수렴청정을 받으며 조정을 다스리게 된다. 
안동 김씨의 세도정치와 삼정의 문란으로 나라가 어지러웠는데, 삼정의 문란을 수습하기 위한 정책을 시행하게 하는 등 민란의 수습에 진력했다. 
1863년(철종 14) 12월 8일 창덕궁에서 승하하였다.
 ​
예릉은 조선 25대 임금 철종과 비 철인왕후의 능이다.
조선시대 『국조오례의』, 『국조속오례의』,『국조상례보편』에 의거한 상설제도로서는 마지막 능이다. 
봉분은 병풍석을 세우지 않고 난간석을 둘렀으며, 이는 쌍릉으로 연결되어 있다.
일반적으로 조선의 능침은 상중하계의 3단으로 되어 있는데 영조의 원릉부터는 중계, 하계의 구분을 두지 않고 문무석인을 같은 단에 배치하였다. 
장명등을 중계가 아닌 하계의 끝에 배치한 것는 예릉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한 양식이다.  

철종은 재위 14년 6개월 만인 1863년 33세의 나이로 승하하였다. 
고종은 철종의 능을 거창하고 웅장하게 꾸며 왕실의 오랜 세도정치를 타파하고 왕권을 강화하고자 하였으므로 예릉의 석물과 부속 건축물들은 웅장한 규모로 조영되었다. 평소 부덕이 높았던 철종의 비 철인왕후가 1878년(고종 15)에 42세로 승하하면서 이곳에 함께 안장하여 쌍릉을 이루었다.



 철종왕릉인 예릉은 경기도 고양시 서삼릉안에 위치합니다.




강화도령이라고도 불리우는 철종임금의 왕릉.

예릉을 탐방해보기로 합니다.









예릉의 상설도가 아주 자세히 적혀있습니다.

쌍릉의 형태입니다.













예릉의 안내문.













금천교입니다.












조선왕릉의 상징이라고 할수있는 

홍살문
정자각
참도
비각등이 보입니다.









홍살문 안쪽으로 들어와 한컷 찍습니다.

참도 우측의 네모난 돌판은 배위라고 합니다.












참도의 우측에 위치한 돌들.

수복방터입니다.

건물은 없어지고 돌들만 남았습니다.












정자각뒤로 언덕위에 능침이 살짝 보이는것 같습니다.













정자각의 동측에는 두개의 계단.

신계.
어계.










정자각의 단청색상을 보니.
무수한 세월이 흘렀음을 짐작할수 있습니다.











색이 많이 바랬습니다.













지붕위에 항상 저자리에서 정자각을 지키고 있는

잡상들.











단청을보니 화려했던 단청을 생각하기 힘들정도로 
많이 색이 바래져있습니다.












정자각이 문들도 많이 색이 바래져있고
기둥도 많이 색이 바랬습니다.













마치 단청이 안칠해져 있던것처럼

세월의 흔적이 가득합니다.











제상이 살짝 보입니다.












철종역시 노란색의 제상입니다.

철종역시 황제로 추존되었다는것을 알수있습니다.











비각.











비각의 내용을 옮겨 적어놓은 안내판입니다.











예릉비의 모습.












정자각의 단청.
역시나 색이 바랬습니다.











예릉역시 올라가볼수 없는 능침입니다.

아래서 올려다보기만 할뿐입니다.












 이제껏 저자리에서 지켜왔고
앞으로도 예릉의 정자각을 지켜갈

잡상들입니다.












댓글

이 블로그의 인기 게시물

운탄고도 백패킹 - 가장 높은 천연 눈썰매장 ( 20150207-0208 )

북한산성 14문 종주기6 - 서암문 - 수문지

21대 영조 - 원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