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대 연산군 - 연산군묘

조선 10대 왕

연산군


연산군은 성종의 아들로 조선 10대 왕이다. 
1494년 성종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올랐으며, 즉위 3년 동안은 별 탈 없이 정사를 펼쳤다. 
그러나 1498년(연산군 4) 훈구파 이극돈, 유자광 등의 계략에 빠져, 사초(史草)를 문제삼아 김종직 등 많은 신진 사류를 죽이는 최초의 사화인 무오사화를 일으켰다.
1504년(연산군 10)에는 생모인 폐비 윤씨가 성종의 후궁인 정씨, 엄씨의 모함으로 내쫓겨 사사되었다고 해서 자기 손으로 두 후궁을 죽여 산야에 버리는 포악한 성정을 드러내기 시작하였다.
또한 경연을 없애고 사간원을 폐지하는 등 비정이 극에 달하여 결국 중종반정에 의해 폐왕이 되었으며 강화의 유배지에서 생을 마감하였다. 

묘의 시설은 대군으로 예우하여 봉분, 곡장, 혼유석, 장명등, 향로석, 재실 등을 갖췄으나, 병풍석, 석양, 석마, 사초지, 문석인 등은 세우지 않았다. 
연산군의 묘비 전면에 ‘燕山君之墓’, 뒷면에는 ‘正德八年二月二十日葬’이라 새겨져 있다. 
부인 신씨의 묘비는 전면에 ‘居昌愼氏之墓’, 뒷면에 ‘六月二十六日葬’이라 새겨져 있고, 연도 부분은 마멸되어 있다.

연산군은 1506년 11월 유배지인 강화 교동에서 31세의 나이로 병사하였다. 
부인 신씨는 영의정 신승선(愼承善)의 딸로서, 연산군의 폐왕과 함께 폐비가 되었다.
연산군이 죽은 뒤에는 묘를 강화에서 양주군 해동면 원당리(현 위치)로 이장하기를 청하여, 1513년 2월 왕자군(王子君)의 예로 이장하고 양주군 관원으로 하여금 치제하게 하였다.




 연산군의묘는 서울 도봉구 방학동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도봉구 방학동의 마을에 연산군묘가 위치하고 있습니다.

연산군묘는 왕릉에서 제외되어 연산군의 묘라고 불리우고 있습니다.

유네스코의 세계유산에도 포함되지는 않는 묘입니다.

한시대를 지배하던 왕의 묘인데 내쫓긴 왕으로서의 무덤은. 

이제 묘라고 밖에 불리울수 없습니다.










연산군묘의 입구입니다.












입구에 적혀있는 연산군 묘의 안내문입니다.












안내소의 모습입니다.













입구에서 바깥쪽에는 저렇게 아주 오래된 느티나무가 있습니다.














연산군의 묘가 저 맨안쪽의 좌측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연산군묘의 상설도입니다.














연산군묘를 뒤로 하고 나오면 이렇게 도봉의 명소라는 안내판이 있습니다.










재실쪽으로 조금 이동하면 이렇게 원당샘이라고 하는 약수가 흐르고 있습니다.













연못도 조성되어 있습니다.













조금만 걸으면 볼수있는 재실.









재실.












 연산군묘의 재실에 관한 안내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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