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대 명종 - 강릉


조선 13대 왕

명종


명종은 중종의 둘째 아들로 1534년(중종 29) 5월 22일 태어났다. 
1539년(중종 34) 12월 21일 경원대군에 봉해졌으며, 1542년(중종 37) 11월 심강의 딸과 결혼했다. 
그로부터 3년 후인 1545년 7월 6일 인종의 뒤를 이어 경복궁 근정전에서 12세의 나이로 즉위하였다.
어린 나이에 즉위한 탓에 어머니인 문정왕후가 수렴청정을 하였는데, 당쟁과 외척의 수탈로 사회가 불안하였다. 
1553년(명종 8) 20세가 되는 해에 친정을 시작하였으나, 어머니 문정왕후의 그늘에서 벗어날 수 없었으며, 어지러운 국정의 한 가운데에서 1567년(명종 14) 6월 28일 경복궁 양심당에서 34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하였다.

강릉은 조선 13대 임금인 명종과 왕비 인순왕후 심씨의 능이다. 
한 언덕에 왕과 왕비의 봉분을 나란히 마련하여 쌍릉으로 조영하였다. 
진입공간에는 금천교가 남아 있으며 정자각 왼편을 보면 정자각 왼편을 보면 제례 시 왕의 식수나 기타 용도로 쓰였던 우물인 어정(御井 또는 제정)이 있다. 
강릉의 문석인은 복두를 쓰고 관복을 걸친 관료의 차림을 하고 있다. 
무석인은 왼편과 오른편의 조각이 조금씩 다른 양상을 보이는데, 오른쪽은 투구가 작고 가슴 전면에 파도 문양이 조각된 반면, 왼쪽 무석인은 팔꿈치에 구름 문양, 등 위와 무릎 부분에 비늘 문양을 새기고 있다.

명종은 유일한 아들이었던 순회세자를 이른 나이에 잃고, 2년 후에는 어머니인 문정왕후를 여의게 되었다. 
그로부터 2년 후 워낙 병약했던 명종은 34세의 나이로 1567년 6월 28일 경복궁 양심당에서 승하하였다. 
같은 해 9월 22일 태릉 동쪽 언덕에 안장되었다.
그로부터 다시 8년 후인 1575년(선조 8) 1월 2일 44세를 맞은 명종의 비 인순왕후가 승하하여 그 해 4월 28일 명종 왕릉인 강릉에 쌍릉으로 왕비릉을 조성하였다.



 명종왕릉인 강릉은 서울시 노원구 공릉동에 위치합니다.





태릉선수촌으로 유명한 태릉 옆에는 강릉이 있습니다.

명종임금의 릉이지요.

방문을 해보도록 합니다.











태릉에서 나와 인도로 걸어서 몇분을 가면 강릉의 입구가 나옵니다.













강릉으로 가는 길입니다.

우측에는 수표소, 좌측앞쪽에는 화장실이 보입니다.












금천교가 보이고, 

그뒤쪽으로 홍살문과 정작각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홍살문,
정자각,

그뒤로 강릉이 살짝 보입니다.











강릉의 안내표지판 입니다.

















정자각으로 이어지는 신도와 어도.













조선왕릉에는 거의 함께 있는 비를 모시는 집. 

비각입니다.
















이번 강릉은 능침에 올라갈수 있게 되어있습니다.

망주석과 곡장이 살짝 보입니다.













칼을 차고 왕을 보필하고 있는 무인석.

몇백년을 이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무인석과 저 능침에 가까이 있는 문인석도 보입니다.















유구한 세월의 흔적으로 얼굴이 검게 바래진 

무인석의 모습.

저 앞쪽으로 보이는 문인석.


그리고 평안히 영면을 취하고 있는 명종임금의 릉입니다.













강릉은 쌍릉의 형태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곡장의 외부입니다.

세월의 흔적으로 군데군데 파손도 되어있습니다.










정자각쪽에서 능침으로 오를때 미끄러짐을 주의하라고 적혀있습니다.

















정자각의 왼편으로 능침을 오를수 있게끔 화살표시가 되어있습니다.
















정자각위에 얹혀진 잡상들은

오늘도 정자각의 안녕을 위해 보초를 서는모습입니다.












 정자각을 오를수 있는 신계와 어계.

좌측이 영혼이 오르는 계단인 신계,

우측이 임금이 오르는 어계입니다.



댓글

이 블로그의 인기 게시물

운탄고도 백패킹 - 가장 높은 천연 눈썰매장 ( 20150207-0208 )

북한산성 14문 종주기6 - 서암문 - 수문지

21대 영조 - 원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