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대 숙종 - 명릉

조선 14대 왕

선조


숙종은 1661년 8월 15일 경덕궁 회상전에서 현종과 명성왕후의 원자로 태어났다. 
1667년(현종 8) 세자로 책봉되었고, 현종이 승하한 1674년(현종 15)에 즉위하였다. 재위 기간은 46년이었다. 
숙종대는 경신환국, 기사환국이 일어나는 등 당파 간의 정쟁이 극에 달하여 사회가 매우 혼란스러웠다. 
그러나 숙종은 이러한 소용돌이 속에서 대동법을 전국에 확대 실시하여 백성들의 부담을 덜고, 상평통보를 주조하였으며, 군사제도를 정비하는 등의 다양한 노력을 기울였다. 
1720년(숙종 46) 60세의 나이로 승하하였다.

명릉은 19대 숙종과 그의 첫 번째 계비인 인현왕후, 두 번째 계비인 인원왕후 세 사람을 모신 능이다.
숙종과 인현왕후의 능이 쌍릉으로 나란히 조영되고, 인원왕후의 능은 오른편 언덕에 단릉 형식으로 모셔져 동원이강의 배치를 보이고 있다.
명릉은 숙종의 명에 의해 능역에 드는 인력과 경비를 절감하여 부장품을 줄이고 석물 치수도 실물 크기에 가깝게 하는 등 간소한 제도로 조영하였는데, 이는 조선 능제의 분수령을 이루게 되었다. 

숙종의 계비였던 인현왕후가 1701년(숙종 27) 승하하자 숙종은 능호를 명릉이라 하여 현재의 위치에 능을 조영하였다.
조영 당시 능의 오른쪽을 비워두라는 우허제(右虛制)를 전교하였고, 1720년(숙종 46) 60세의 나이로 승하한 숙종은 생전에 바라던 대로 인현왕후의 오른쪽 빈자리에 잠들게 되었다.
숙종의 두 번째 계비 인원왕후는 1757년(영조 33) 71세로 승하하여 명릉의 오른쪽 언덕에 묻혀 동원이강릉을 이루고 있다. 



 숙종왕릉인 명릉은 고양시 덕양구의 서오릉의 한편에 위치합니다.


숙종왕릉인 명릉을 살펴보기로 합니다.







우측에 홍살문이 보입니다.

좌측에는 살짝 비각도 보이네요.









명릉의 안내판입니다.

숙종은 현대에 비교하자면 부인들이 참 많았습니다.













정자각이 보입니다.

정자각에 가려져 안보이는 곳이 숙종과 인현왕후가 잠들어 있는곳이며

우측에 보이는 능침이 인원왕후가 잠들어 있는 곳이지요.













어도를 따라 걷다가 우측에 보이는 수복방터 입니다.














정자각이 더 가까워집니다.













정자각을 유구한 세월동안 지키고 있는 잡상의 모습들










능침에 올라봅니다.

숙종과 인현왕후가 잠들어 있는곳입니다.













역시나 오랜세월을 왕과 왕비를 호위하고 있는

문인석과, 무인석입니다.

문인석과 무인석의 모습은 릉마다 약간씩 다릅니다.











두 능침이 보입니다.

숙종이 잠드신 좌측의 능침의 경우에도 병풍석은 없고 난간석으로만 이루어져 있는 능침의 모습입니다.









장명등, 양석, 호석, 그리고 이곳을 감싸안는 곡장의 모습입니다.











저 건너편에 위치한 인원왕후의 능이 보입니다.

몇분이 탐방을 오신것 같네요.














우측부터

인현왕후, 숙종의 능.

그리고 숙종의 능너머 살짝 인원왕후의 능을 지키는 무석인이 보입니다.











인현왕후의 능침 우측을 한컷 찍어봅니다.















비각의 설명문을 찍어봅니다.















비각의 모습.















정자각으로 오르는 두개의 계단

좌측은 신이 오른다는 신계,
우측은 왕이 오른다는 어계입니다.














제상의 모습입니다.

붉은색 제상이군요.

고종때 숙종은 황제로 추존하지는 않았군요.

정자각내의 제상이 노란색이면 황제로 추존된것을 의미합니다.














 정자각을 뒤로하고 

명릉을 나섭니다.

부디 평안하게 쉬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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