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대 태종 - 헌릉

조선 3대 왕

태종


태종은 태조와 신의왕후 한씨의 다섯 번째 아들로 1367년(고려 공민왕 16) 5월 16일 함흥에서 태어났다. 
태조 이성계가 조선 왕조를 건국하는 데 큰 공을 세웠으며, 2차 왕자의 난을 평정하고 1400년 11월, 정종에 이어 왕위에 오르게 되었다.
1405년에는 개경에서 한양으로 천도하였고, 17년 10개월의 재위기간 동안 사병제 폐지, 호패법 실시 등으로 왕권을 강화하고 국가의 기틀을 다졌다. 
1418년(태종 18) 왕위를 물려주고, 상왕으로서 정치에 관여하다가 1422년(세종 4) 5월 10일 연화방 신궁에서 56세의 나이로 승하하였다.

헌릉은 3대 태종과 원비 원경왕후의 봉분이 같은 언덕에 조영된 쌍릉 형식으로, 조선시대 쌍릉의 대표적인 능제이다. 
헌릉의 능 앞 석물들은 망주석만 빼고 모두 두 쌍씩 배치되었는데, 이는 고려 왕조의 현릉(玄陵)과 정릉(正陵) 제도를 기본으로 한 것이며 조선시대에서는 유일한 두 쌍 배치 방법이다.
헌릉에는 제례의 마지막 절차로 지방을 불태울 때 쓰던 소전대가 남아 있으며, 봉분 앞 상석 아래 놓인 고석의 개수가 5개로 전형적인 조선 초기의 상설제도를 따르고 있다.

원경왕후가 1420년(세종 2) 7월 10일 수강궁(창경궁) 별전에서 태종보다 일찍 세상을 뜨자 태종의 명으로 같은 해 9월 17일 대모산 기슭에 건좌손향으로 왕후의 능을 조영했는데, 억불정책으로 원찰을 세우지 못했다. 
그로부터 2년 후인 1422년(세종 4) 태종이 승하하자 아들 세종은 같은 해 9월 6일 어머니 원경왕후의 능 옆에 봉릉을 따로 만들어 아버지를 모시고 난간으로 연결하여 쌍릉을 조성하고 곡장을 둘렀다.



 태종의 무덤인 헌릉은 헌인릉이라고 해서 내곡동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
크게 보기.



  
 헌인릉중에서 먼저 태종왕릉인 헌릉을 살펴보겠습니다.











매표소도 가기전에 들어가는 길에 이렇게 재실이 있습니다.













재실로 들어가 볼까요.











재실 안쪽에 있는 건물입니다.

나무로 이루어진 부분이 많기에

소화기가 일렬로 깔려있네요.















 입구에 도달했습니다.

매표소에서 표를 끊고 입장을 해봅니다.











헌릉의 안내판을 먼저 살펴봅니다.











홍살문밖에서 보는 헌릉의 모습입니다.

정자각과 우측의 비각,

정자각 뒤로 보이는 쌍릉형태가 보입니다.











신도, 어도의 구분이 없군요.

신도만 존재하는 형태로 쭈욱 길이 이어집니다.

신도는 신령이 다니는 곳이니 밟지 않는게 좋겠죠.










정자각과 비각사이로 보이는 쌍릉.












아마도 조선왕릉의 정자각중에서 가장 낡아보입니다.

기와및 목재부분들이 세월의 흔적이 역력합니다.













기와가 많이 낡았네요.












오색찬란했을 단청도 색이 너무나도 많이 바랬습니다.









정자각의 문들도 많이 색이 바랬습니다.










태종의 제상은 색이 빨간색입니다.

황제는 노란색
왕은 빨간색이지요.













쌍릉이 보이네요.










능침을 올라갈수 있도록 좌측에 이렇게 계단이 만들어져 있습니다.













쌍릉










헌릉의 공사가 한참이군요.









마주보는 무인석과 문인석들













릉에서 아래쪽을 내려다봅니다.













비각의 모습.

이역시 많은 세월의 흐름을 알수있습니다.










귀부의 얼굴이 잘라져 나가있네요.









우측의 경우는 아주 보존이 잘되어있습니다.














비마저 세월의 흔적을 역력하게 볼수있습니다.














비각의 단청역시 세월의 흐름만을 느끼게 해주고 있습니다.


댓글

이 블로그의 인기 게시물

운탄고도 백패킹 - 가장 높은 천연 눈썰매장 ( 20150207-0208 )

북한산성 14문 종주기6 - 서암문 - 수문지

21대 영조 - 원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