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대 광해군 - 광해군묘

조선 15대 왕

광해군


광해군은 1575년(선조 8) 선조와 공빈 김씨 사이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으며, 곧 세자로 책봉되었다. 
1608년 즉위한 광해군은 임진왜란으로 피폐해진 국토와 문화재 복구사업에 전념했다. 창덕궁 등 궁궐을 중수하고, 대동법을 실시했으며, 특히 당시의 국제정세를 적극적으로 이용한 북방외교정책은 광해군 최고의 치적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광해군은 형이었던 임해군과 이복동생 영창대군을 유배 후 살해하고, 인목대비를 서궁에 유폐시키는 등의 실정으로 반정의 싹을 키웠다. 
특히 영창대군을 방안에 가둔 채 불을 때어 질식사시킨 일은 백성들의 원성을 사기에 충분했다.
1623년 능양군(인조)을 포함한 반정군은 광해군을 폐위하여 강화로 유배시키고, 인목대비의 윤허를 받아 왕위에 올라 반정을 성공시켰다. 
제주도로 유배지가 옮겨진 광해군은 그곳에서 67세의 천수를 다하고 1641년(인조 19) 세상을 떠났다. 

광해군묘는 조선 15대 임금이자 두 번째 폐위 임금인 광해군과 그의 부인 문성군부인의 묘이다. 
쌍분인데, 오른쪽이 문성군부인 유씨의 묘이다. 
연산군묘와 동일하게 군묘(君墓)의 형식으로 간소하게 조성되어 있으며, 두 봉분에 각각 비석과 상석이 있고. 장명등 그리고 망주석과 문석인 1쌍이 설치되어 있다.

제주도로 유배지가 옮겨진 광해군은 그곳에서 67세의 천수를 다하고 1641년(인조 19) 어머니 무덤 발치에 묻어달라는 유언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그 때문에 1643년(인조 21) 제주도에서 경기도 남양주시 진건읍에 위치한 지금의 묘소로 옮겨졌으며 건너다보이는 곳에 어머니의 묘소인 성묘가 자리한다. 



 광해군묘는 경기도 남양주시에 위치합니다.






임금의 자리에서 폐위된 조선 15대 임금.

광해군.

광해군묘는 매우 쓸쓸한 자리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이곳이 광해군묘로 가는 입구가 됩니다.












이렇게 구불구불한 차로를 따라 올라가야 합니다.

굽이굽이 몇굽이를 올라가야 하지요.











광해군묘.

저 녹색의 담사이에 있는 문을 열고 들어가야 합니다.

보통때는 문이 잠겨져 있기에 방문전에 신청을 하는것이 바람직 합니다.













출입을 아무때나 할수있는 곳은 아닙니다.














이렇게 작은 산길을 따라 가주면 광해군묘가 있습니다.

저 앞에 살짝 보이는듯 하군요.













곡장이 보입니다.















광해군묘의 안내판.

















능침으로 오르는 돌계단입니다.













쌍릉으로 이루어진 곳입니다.

망주석, 비, 문석인이 보입니다.











다른 조선의 왕릉에 비해 단촐하기 그지없는 묘입니다.




















오랜세월을 이곳을 지켰을 문인석.


그리고 그옆의 망주석.

이 망주석의 상단은 파손이 되어 있습니다.












곡장의 뒤쪽으로 가서 내려다봅니다.

광해군은 어떤것을 보고 계실지.










곡장을 따라 돌아봅니다.














문인석, 망주석, 곡장,

그리고 광해군묘의 안내석.











광해군묘의 앞에 설치된 여러 조형물들을 찍어봅니다.

장명등도 부분부분 파손이 되었군요.
















다른 조선왕릉에 비해 매우 단촐합니다.


















광해군이시여.

편안히 잠드소서.

광해군묘를 뒤로 하고 길을 나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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