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대 인조 - 장릉


조선 16대 왕

인조


인조는 임진왜란 때인 1595년(선조 28) 11월 7일 왕실의 피난처였던 황해도 해주에서 태어났다. 서인 세력과 손잡고 공빈 김씨 소생의 삼촌인 광해군을 물러나게 한 인조반정을 통해 1623년 3월 13일 즉위하였다. 정묘화란, 병자호란 등의 변란과 강화도로의 피신 사건, 남한산성에서의 삼전도 사건으로 청과의 외교관계가 악화되었으며 소현세자와 봉림대군을 청에 볼모로 보내는 등 혼란스러운 정국을 이끌었다. 1649년(인조 27) 5월 8일 창덕궁 대조전에서 55세의 나이로 승하하였다.

장릉은 조선 16대 인조와 그의 원비 인열왕후의 합장릉이다. 한 차례의 천장을 치렀는데, 처음에 만든 석물을 새 능으로 옮길 때 옛 능의 병풍석, 난간석 등이 새 능과 규모가 맞지 않아 그대로 이전하지 못하고 새로 만들었다. 따라서 장릉에서는 처음 조성한 석물과 천장할 때 새로 조성한 석물이 함께 어우러져 17세기, 18세기의 왕릉 석물을 동시에 볼 수 있다.
병풍석에 기존의 구름문양과 십이지신상을 대신하여 모란꽃과 연꽃 문양을 새긴 것이 특이하다.

1635년(인조 13) 12월 9일 인렬왕후가 승하하자 능호를 장릉이라 하여 이듬해 4월 12일 파주 운천리의 언덕에 능을 조영하였다. 인조는 장릉을 조영하면서 오른쪽에 미리 자신의 능을 마련해 두었다가 승하 후 그곳에 묻혔다. 그러나 후에 화재가 일어나고 뱀과 전갈이 능 주위로 무리를 이루고 석물 틈에 집을 짓는 등 변이 계속되었다. 따라서 1731년(영조 7년) 8월 30일 천장을 결정하고 현재의 파주시 탄현면 갈현리로 옮겼다. 



인조왕릉인 장릉은 경기도 파주시에 위치합니다.







인조왕릉인 장릉은 공개제한구역입니다.

미리 허가를 받은후에 방문하시길 권장합니다.












장릉의 입구입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임을 알리는 표지석







장릉 안내판.

이정도로 준비가 되었다면 조속히 공개하는 날이 오기를 바랍니다.












공개제한 구역임을 알리고 있네요.











문을 통과하면 이렇게 길이 뻗어있습니다.








저쪽에 재실이 있습니다.











장릉의 안내가 또 있습니다.











재실이 특이하게도 담들이 없습니다.

아마도 복원을 해야 할듯 싶습니다.











다시 장릉쪽으로 걸어봅니다.












사람의 흔적을 찾아보기 어려운곳입니다.













정말 자연적이군요.

고라니를 발견합니다.

그것도 두마리나.












홍살문과 정자각등이 보입니다.














비각과 수복방도 있군요.











정자각으로 쭈욱 뻗은 신도와 어도.














수복실과 저 멀리 비각.














장릉의 능침이 살짝 보입니다.













비각.















능침에 올라봅니다.











문인석, 무인석, 석마, 망주석등이 보입니다.

세월의 흔적을 흠뻑 입은채로 말입니다.













능침의 상부엔 잔디의 관리때문인지 무언가가 씌워져 있네요.












유구한 세월을 한자리에 서서 지키는 석물들.












아래쪽을 내려다 봅니다















반대쪽도 내려다 봅니다.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느낄수 있는 무석인과 문석인.













 비각과 정자각사이로 한번 내려다 보고

발길을 돌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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