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대 효종 - 영릉

조선 17대 왕

효종


효종은 16대 인조와 인렬왕후의 차남이다. 
소현세자와 함께 청에 볼모로 잡혀 갖다가 귀국 후 소현세자가 병사하자 왕위에 올랐다. 
효종은 10년간 재위하면서 대동법 실시, 화폐 개혁 등으로 국가의 기강을 확립하고 생산성을 높였으며, 북벌 계획을 수립하고 이에 대비하여 군사력을 강화시키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남한산성, 북한산성을 수축하였다. 
그러나 북벌의 기회는 얻지 못하고, 1659년(효종 10) 승하하였다.

영릉은 조선 17대 효종과 정비 인선왕후의 능이다. 
왕릉과 왕비릉이 한 언덕에 같이 있는 경우 대개는 봉분을 나란히 두는 쌍릉의 형식을 택하는데, 영릉은 특이하게도 왕릉과 왕비릉이 상하로 조영되어 있다. 
이러한 배치를 동원상하릉이라고 하는데 동원상하릉 중에서는 영릉이 조선 최초이다.
왕릉과 왕비릉 모두 난간석만을 둘렀으며 왕릉의 봉분 주위로는 곡담이 설치되어 있다. 
그러나 왕비의 능에는 곡담이 없어 두 능이 한 영역 안에 있음을 드러내주고 있다. 

효종이 1659년(효종 10) 5월 4일 창덕궁 대조전에서 승하하자, 
이 해 10월 29일 건원릉 서쪽 산줄기에 옥체를 모셨다. 
그런데 1673년(현종 14) 능을 천장해야 한다는 여론이 있어 현재의 위치인 세종의 왕릉 영릉 동쪽으로 입지를 정하였으나, 천장을 위해 능을 열어보았을 때 당시 입지에는 문제가 없었음이 밝혀졌다.
결국 영릉은 천장하였으나 이에 연루된 자들은 면직을 당해야 했다. 
천장 다음 해에 인선왕후가 승하하여 효종 왕릉 아래에 인선왕후의 능을 조영하였다. 

세종대왕유적홈페이지 ; http://sejong.cha.go.kr/n_sejong/index.html


효종왕릉인 영릉은 경기도 여주시에 위치합니다.





여주의 효종왕릉인 영릉에 가보기로 합니다.

세종대왕릉인 영릉과 발음이 같습니다.



.



입구와 매표소의 모습입니다.

세종왕릉때문에 상대적으로 적은 사람이 올것 같기도 합니다.













입구를 들어서면 바로 거대한 고목과 재실이 살짝 보입니다.











재실입니다.











영릉의 재실에는 꽤나 유명한 회양목이 있습니다.












재실내부에 있는 거대하고 오래된 나무의 모습입니다.














효종왕릉을 향하여 걸어봅니다.














홍살문이 나타납니다.













정자각으로 뻗은 신도와 어도.

금천교가 저 중간에 위치하고 있는게 특이합니다.










수복방이 금천을 건너서 위치하고 있습니다.










제상.

붉은색입니다.












효종대왕의 릉은 같은 정자각뒤로

두개의 능이 위아래로 위치하는 특이한 구조입니다.

이런 형태를 동원상하릉이라고 한다고 합니다.

능침에 오르기 위해서는 좌측으로 이렇게 오를수 있는 길이 조성되어 있습니다.











능침이 보입니다.















아래쪽으로 내려다 보이는 왕후의 릉.













뒤쪽에 조성되어있는 효종왕릉을 봅니다.















병풍석은 생략이 되어있고 난간석만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문석인과 무석인은 색이 바랜채로 그렇게 왕을 보좌하고 있습니다.













좌측에 위치한 문석인, 무석인.












다시 왕비릉쪽으로 해서 내려오기로 합니다.













아름다운 단청












.
비각의 모습을 뒤로 하고 영릉을 나섭니다.

부디 평안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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