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대 현종 - 숭릉

조선 18대 왕

현종


현종은 효종과 인선왕후의 아들로, 1641년(인조 19) 2월 4일 효종이 세자의 몸으로 볼모로 잡혀가 있던 청나라 심양에서 태어났다. 
1659년 5월 효종이 승하하자 19세의 나이로 창덕궁 왕위에 올랐다. 
재위 기간 동안 현종은 함경도 산악지대를 개척하고, 동철활자 10만 자를 주조시켰으며, 천문 관측과 역법 연구를 위하여 혼천의를 다시 제작하게 하는 등 다양한 업적을 남겼다. 
그러나 두 차례에 걸친 예송논쟁으로 말미암아 국력이 쇠퇴해졌다는 평을 받고 있다. 
1674년(현종 15) 8월 18일 34세의 나이로 창덕궁에서 승하했다.

왕과 왕비를 하나의 곡장 안에 모셔 봉분이 나란히 2기로 조성된 능을 쌍릉이라고 한다. 
높지 않은 언덕 위에 쌍릉으로 조영된 숭릉은 왕릉과 왕비릉 모두 병풍석 없이 난간석만으로 연결되었고, 능침 앞에 혼유석이 하나씩 놓여 있다. 
봉분 앞의 장명등과 망주석에는 인조의 장릉처럼 꽃무늬가 새겨져 있으며, 망주석 위쪽에 ‘세호’라고 불리우는 작은 동물 조각이 뚜렷하게 조각되어 눈길을 끈다. 

현종이 승하한 1674년(숙종 즉위) 8도의 승군 2,650명을 징발하여 숭릉을 조영하였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1684년(숙종 10)에는 현종의 비 명성왕후 청풍 김씨의 능을 조영하였다. 
숭릉의 혈을 파기 위해 겉흙을 걷어냈을 때 부도를 세우려 했던 흔적이 나왔으나, 깊이가 3척밖에 되지 않아 지맥을 손상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또한 광중 밖이기 때문에 그대로 진행했다. 



현종왕릉인 숭릉은 동구릉내에 위치합니다.







현종왕릉은 동구릉에 태조이성계의 릉에서 가장 멀게 위치합니다.

현종왕릉인 숭릉의 가장 특이한점은 정자각의 지붕모양이 다른 릉들과는 다르다는 점이지요.

팔작지붕이라고 불리우는 형태를 가진 유일한 정자각이라고 하네요.

또한 이 정자각에는 익랑이 있다고 하는 조금은 특별한 정자각입니다.


그럼 숭릉을 둘러보도록 하겠습니다.









숭릉의 안내표지판입니다.












조선왕릉의 상징이라고 할만한

홍살문과 정자각이 보입니다.











정자각까지 쭉욱 뻗은 신도와 어도.















저멀리 비각이 보이고

이 앞쪽에 무언가 있습니다.











수복방의 터입니다.

문화재청에서 언젠가는 복원계획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정자각과 뒤로 보이는 왕과 왕비의 릉이 살짝 보입니다.















정자각.

기와 지붕의 모습이 이전에 보았던 다른 정자각과는 모양이 다릅니다.

다른 왕릉의 어떤 정자각이라도 사진을 한번 다시 보고 오시면 좋을듯 하네요.

1. 지붕이 팔작지붕이라고 불리우는 형태입니다. ( 팔작지붕이라고 해서 그런지 활짝 핀 지붕같네요. )
2. 양쪽 날개(?) 밑에 기둥이 받쳐져 있습니다. 어려운말로는 익랑이라고 하지요.













촛점이 조금 흔들렸습니다.














단청과 잡상의 모습을 찍어봅니다.

잡상의 숫자가 많지 않네요.













아름다운 단청의 색깔














정자각내에 놓여있는 제상

창호지가 뚫어진 모습이 자연스럽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합니다.












신계와 어계















좌우의 잡상의 숫자가 다릅니다.

좌측의 잡상이 파손된것일까요?












정자각 뒤편으로 보이는 두개의 능침.

가로막혀있기에 올라가보지는 않습니다.
















저 안쪽에 보이는 비각의 모습
















정자각의 

가운데 부분만 열려있습니다.
















정성을 가득담아 색을 칠했을

단청.

우아함의 극치를 달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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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시한번

숭릉을 돌아보며 

인사를 드립니다.


평안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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